<쌍생아>-선과 악에 대하여 =영화 감상기=

한 줄 요약 - 누구에게나 같지만 다른 모습은 있다

일본 메이지 시대의 말기,아버지의 뒤를 이은 명의 유키오는 아름다운 여인 링을 아내로 맞아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가족도 없는 링을 유키오의 부모는 탐탁치 않아 하지만 유키오는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집 안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게 되고,아버지와 어머니가 연달아 돌아가시는 사고를 겪게 됩니다.
불안함에 시달리던 어느 날,유키오는 정원에서 자신을 우물 안으로 밀어버리는 누군가와 맞닥트리게 되는데,놀랍게도 그는 유키오와 똑같은 얼굴을 한 누군가 였습니다.

이때부터 유키오의 얼굴을 한 누군가의 이중 생활이 계속되며 신비스러운 여인인 링의 과거가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일본 독립영화의 기수인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영화입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데뷔작인 <철남>은 아직 감상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6월의 뱀> 을 워낙에 인상깊게 보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상당히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역시 영화는 저에게 실망을 주기는 커녕,오히려 제가 생각지도 못한 재미와 진한 여운을 주더군요.

이 영화의 장르는 사실 미스테리가 약간 가미된 드라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호러 영화가 아니고,또한 호러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그런 으스스한 BGM이 전혀 사용되지도 않는데,각 인물의 표정 클로즈업과 분위기만으로 중요한 순간에 호러 영화 뺨치는 긴장감과 불길함을 주는 연출은 정말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네요.

그런데 단순 드라마로 놓고 보기에는 이 영화에는 굉장히 은유적인 표현이 많아요.

극 중에서 유키오는 전쟁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의사인데,마찬가지로 의사였던 자신의 아버지에게 "숨이 끊어져가는 사람의 목숨을 억지로 연명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이를 빨리 해방시켜 주는 것이 옳은지,아닌지 고뇌하는 장면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그의 직업이 의사인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직업 윤리상 '죽음이 아니라 치료를 통해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옳은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장면은 한밤중에 그를 찾아온 두 명의 환자입니다.
한 명은 유키오가 사는 곳의 시장이었고,또 한 명은 빈민굴 출신의 흑사병 환자였지요.그런데 흑사병 환자는 어른이 아닌 아이였고,어머니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명의로 소문난 그의 병원까지 어렵사리 찾아온 것이지만 유키오는 그녀를 외면하고 시장을 먼저 살립니다.

물론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완치가 어려웠던 흑사병 환자보다-게다가 전염성이 높으니-시장을 먼저 구하는게 맞는 일일지도 모릅니다.하지만 왜 그녀를 외면했냐는 링의 말에 분노하는 유키오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그가 정말 온전하게 '선한 인물' 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유키오를 우물에 가둔 '그'의 경우를 봅시다.그의 동기는 일단 겉보기엔 복수로 보이긴 하지만,후반부에 보여준 모습을 보았을때 자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부유한 집과 가족의 행복 등등-에 대한 갈망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유키오에게 한 짓을 보면 그도 '악한 인물' 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종합해보았을때 과연 그를 무조건 '악' 이라고 손가락질만 할 순 없는 노릇이죠.

그리고 이들의 중심에 선 인물,링.
링의 비중은 이 영화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자칫 잘못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뭐라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확실한건 그녀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강과 같습니다.

유키오와 링이 처음 만난것도 강이었고,'그'가 죽을뻔 했지만 목숨을 구한것도 강이었으며,마지막에 자살하려는 링을 다시 찾은 것도 강이었지요.

그리고 유키오와 '그'의 사이에 서 있는 링의 존재도 역시 그 둘을 갈라놓은 '강'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츠카모토 신야 감독 스타일의 영화를 처음 접해보고 싶거나,혹은 뭔가 기괴한 장면 없이도 어딘가 기이한 연출과 스토리를 보고 싶다면 권해드리고 싶네요.

<이트>-파괴적 충동에 대한 보고서 =영화 감상기=


한 줄 요약-가장 어려운 기술은 살아가는 기술이다 by 메이시

노벨라는 배우 지망생이지만 3년째 배역을 따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돈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고,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는데다,자신보다 어리고 예쁜 배우 지망생들은 계속해서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불안감에 눈을 뜨며 오디션을 보기는 하지만 좋은 결과는 들리지 않고,그럴 때마다 그녀는 유일한 친구인 캔디스와 함께 클럽에 가서 남자들을 꼬셔 술만 얻어마시고 도망치는 나날을 계속합니다.

미래는 앞이 보이지 않는데,현실은 코 앞에서 자꾸만 그녀를 옥죄며 숨막히게 만듭니다.

그런던 어느 날,그녀는 급기야 자신의 손을 물어뜯기 시작하고 불안감이 느낄 때마다 자신의 몸을 뜯어먹기 시작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줄리아 듀코나우 감독의 영화 <로우>를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그보다 몇년 더 훨씬 빨리 제작된 영화입니다.

비슷하긴 하지만 <로우>보다는 훨씬 더 강한 고어씬과 함께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로우>가 주인공과 그녀의 중심인물을 통한 인물 관계를 바탕으로 사회 속 인간의 욕망과 성장에 따른 영화였다면,이 영화는 주인공을 통해 삶에 지치고 우울한 이들의 극단적인 파괴적 충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노벨라는 끊임없이 자신을 타인과 비교합니다.사실 그녀에겐 잘못이 없어요.
그녀는 충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며,연기력이 꿇리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 제작판은 그렇지 않죠.그들이 원하는 신인은 그녀보다 젊고 그녀보다 예쁘며 그녀보다 좀 더 매력적인 여성을 원합니다.이것은 절대로 노벨라의 잘못이 아니에요.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스스로를 원망하며 이젠 정말 포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자조적인 말을 내뱉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옆에서 지탱해주는 것은 친구인 캔디스입니다.그녀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지만 자신의 직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지요.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자신의 꿈을 좇는 노벨라를 그녀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으며,그런 그녀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캔디스는 자신이 받은 분노를 외부를 향해 거침없이 표출합니다.
클럽에서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을 어떻게든 해보려는 생각밖엔 없죠.게다가 일하는 미용실은 어떤가요.
일 때문에 참고는 있지만 그곳에서도 그들은 그녀에게 스트레스 덩어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캔디스는 거침없이 남자들의 귓가에 '지금 내 지갑엔 총이 있어' 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총은 최소한의 자기방어이자 그녀에게 숨겨진 공격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노벨라를 지키기 위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녀는 노벨라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합니다.다만,그것이 조금 잘못된 일이라 할 지라도 말이지요.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던 노벨라는 조금씩 자신의 몸을 뜯어먹습니다.처음엔 왼손,다음엔 오른발,다시 자신의 팔.......

불안감은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이 분노는 다시 타인에 비해 보잘것 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되어 자기 자신을 향하게 한 것이지요.
자기 자신을 참을 수 없는 그녀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그 누가 그녀에게 미쳤다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요.그녀는 계속해서 지금까지 상처받으면서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힘겹게 버텨왔는걸요.
지금 당장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우울감과 자기 혐오에 시달리면서 힘겹게 혼자만의 싸움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말이에요.그녀의 모습은 오늘도 힘겹게 하루를 살아남은 우리의 모습을 비춘 자화상이 아닐까 싶어요.

결국 영화는 끔찍한 파국을 향해 진행됩니다.그녀가 믿어왔던 모든 것은 무너지고 부서지고 작은 조각들이 바닥에 흩뿌려져 그 형태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노벨라가 오디션을 보는 장면이었어요.그녀가 보여준 1인 연기는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그녀 자신과,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는 관객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그녀의 연기가 끝나자마자 비웃기 바쁩니다.그러면서도 태연하게 자신들은 포르노 회사라고 밝히더군요.

꿈을 짓밟힌 그녀가 물건을 던지고 울부짖는 모습은 지금도 어디선과 몸부림치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엔딩이 정말 슬펐던 이유는,이 파국이 처음부터 예정되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모든것을 포기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띈 그녀의 얼굴는 너무나 슬프고 또 한편으로는 아름다웠습니다.

<레이디 인 더 워터>-평범한 이들이 만드는 기적 =영화 감상기=

한줄 요약 - 배급사의 장난질의 또 다른 희생양

아파트 관리인인 클리브랜드는 최근 수영장에서 누군가 밤마다 수영을 한다는 증거를 발견하며 그게 누구인지를 밝혀내려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수영장에 숨어있던 요정인 여자를 발견하게 되고,그녀를 요정들의 세계인 블루 월드로 돌려보내기 위한 시도를 시작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판타지'라는 요소를 좋아합니다.
아,여기서 말하는건 <해리 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같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판타지 영화가 아니라,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평범한 현실 세계의 기반 위에 판타지적 요소가 녹아든 걸 좋아해요.

만약 예를 들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 같은 영화처럼 말이죠.
사실 이 영화는 <판의 미로>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정 반대의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단 영화 자체는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어요.개연성에 있어서 좀 의문이 드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해명할까,하고 기다렸지만 별 다른 변명이 없는걸 보니 애초에 시작부터 감독이 이렇게 쭉 밀고 나가기로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영화가 너무 잔잔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더군요.
사실 '상업 영화'라는 것을 생각했을때 이 부분은 너무 아쉽습니다.
발단-전개-절정-결말 중에서 전개 이후에 절정 없이 결말로 끝나버린 느낌이랄까요... =_=

차라리 감독이 자신의 주특기를 내세워 팽팽하게 날 선 긴장감을 조성했다면 이보다 좀 더 보는 재미가 있었을텐데요.

그래도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정말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적' 이었어요.

주인공인 클리브랜드는 스스로 '불행한 사람' 이라고 합니다.
그는 독신에 대머리고 말을 더듬죠.그저 주변에 흔하게 있을 법한 '아파트 관리인'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의 과거를 알게 되는 순간,그리고 왜 어째서 처음 보는 요정을 도와주려고 하는지 그 타당한 이유가 밝혀지는 수난 관객들은 주인공을 응원할 수 밖에 없어집니다.

조금은 치사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는 이미 소중한 것을 잃었고,앞으로 다가올 행복을 포기한 채 무료한 일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사람이니까요.
이런 사람이 용기를 내서 드디어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본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 혼자만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아파트 입주민들과 힘을 합칩니다.
만약 클리브랜드가 불성실하고 끊임없이 입주민들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면,아마 그는 진작에 해고됐을지 모르는 일이죠.하지만 주민들은 그의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고 그의 도움 요청에 망설이지 않고 같이 동참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클리브랜드가 일구어낸 그의 유일한 재산이자 업적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평범한 이들이기에 실수를 할 수도 있고,또 좌절하기도 하고,겁을 먹기도 하지요.
하지만 잔잔하면서 오버하지 않고 이들의 행보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일은 그 나름대로 매우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줄 요약은...아마 이 영화를 보시게 되면 또 낚였구나,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정말 <판의 미로>와 완전히 정반대로 배급사가 낚시질을 했더군요.개인적으로 '잔혹 동화' 스타일도 좋아해서 나름 기대했는데.
제발 이딴 식으로 장난질 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_-

<메이>-그녀가 친구를 만드는 방법 =영화 감상기=

한 줄 요약 : 비난할 수 없는 그녀의 살인

메이는 태어날 때부터 한 쪽 눈이 사시였습니다.이로 인해 친구를 만들 수 없었지요.
생일날 엄마가 만들어준 인형 수지만이 유일한 친구였던 그녀는 동물 병원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사람 친구'인 아담과 폴리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피를 보면 묘하게 흥분하는 그녀를 보고 아담과 폴리는 그녀를 떠나게 되고,"친구가 없으면 만들면 된단다" 라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린 메이는 직접 친구를 만들기로 합니다.

앞 전에 리뷰했던 영화 <더 워먼>을 감독한 럭키 맥키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호러영화 치고 매우 정적으로 진행이 돼요.놀래키거나 잔인한 장면도 없고,오히려 주인공 메이에게 초점이 맞춰진 영화입니다.

덕분에 지금 보면 뭔가 지루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게 사실이긴 합니다.
다만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인공을 향한 감정 이입이 잘 된다는 장점이 있지요.
어쩌면 감독은 그것을 노린 걸지도 모릅니다.

메이는 타인의 신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아담의 손,폴리의 목,그리고 폴리의 여자친구의 다리 등등.
이는 어릴 적 신체적인 문제로 인해 친구를 만들 수 없었던 그녀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없는,그리고 자신과는 정 반대되는 사람을 향한 동경으로 인해 그녀는 아담에게 '넌 정말 완벽한 사람이야' 라는 말을 하지요.
물론 아담은 '완벽한 사람은 없어' 라고 말하고,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사실이겠죠.

다만 메이의 입장도 이해가 가능한 것이,그녀가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 취미이고,또 스스로의 손에 상처를 내기도 하는 등 손을 보는 일이 자주 있다보니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사실 제가 봤을땐 남자친구인 아담이 아니라 인형인 수지가 아닐까 싶어요.
수지는 오랫동안 그녀 곁을 떠나지 않은-사실 인형이니 떠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친구였으니까요.
그만큼 그녀를 옆에서 오래 보았고,그녀가 얼마나 외로운지 가장 잘 아는 존재가 바로 수지입니다.

아이러니한건 그녀가 바로 인형이라는 점이지요.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힘들고 외로워 울고 있을때 말 한 마디,손길 한 번 건네줄 수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영화에서는 수지가 담긴 상자의 유리가 조금씩 금이 가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정작 그녀가 인형을 안고 봉사활동을 하는 학교에 갔을때 유리는 아주 멀쩡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수지라는 인형 자체가 그녀의 또 다른 자아이며 유리는 그 자아를 보호하고 있는 벽이 아닐까 싶어요.
그녀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이 유리(벽)가 깨진 직후라는걸 곱씹어 보면 더더욱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엔딩은 충격적이다,라기 보다는 상당히 씁쓸했어요.
왜냐하면 결국 그녀는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었고,또 이해받을 수 없었으니까요.

'난 이상한 걸 좋아해' 라고 말하는 아담도,폴리도,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중 그 누구도 메이를 이해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 슬픈 사실이지요.그래서인지 저는 더더욱 주인공에게 애착이 갑니다.
누구보다 외로웠을 테니까요.

<인새니테리움>-진흙 속의 진주같은 영화 =영화 감상기=

한 줄 요약 - 흔한 재료로 얼큰하게 만든 요리

개인적으로 저에게 호러 영화는 '라면' 같습니다.언제나 가볍게 즐길 수 있고,또 안 먹으면 왠지 먹고 싶고,종류도 다양하죠.
물론 덕분에 제 입맛에 맞는 것도 있고,영 아닌것도 있지만 그래도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있네요.

영화의 플롯은 간단합니다.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살 기도로 인해 정신병원에 들어간 동생 릴리를 면회하려 하지만 잭은 그때마다 만날 수 없다는 병원의 일방적인 행동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 미친 척 자해를 해 병원에 입원합니다.
그곳에서 잭은 원장이 만든 '오피움'이라는 정체불명의 약물로 환자들이 서서히 미쳐가는 것을 보게되고,동생인 릴리와 같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결행하게 됩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뭐 뻔하디 뻔한 좀비 영화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사실 저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된 영화였구요.

이런 영화일수록 뻔한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연출을 하냐,에 따라 영화의 재미가 180도 바뀌게 되는데 전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단순한 좀비가 아니라 정말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들이 된 환자들은 주인공 일행을 쫓아올뿐 아니라,자기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지옥같은 광경을 연출하게 됩니다.

특히 좋았던 부분이 엘리베이터 통로 탈출 씬인데,B급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서는 다른 영화 부럽지 않은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아주 잘 연출하고 있어요.이 부분에서는 저도 정말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몰입해서 봤네요.

사실 약물로 인해서 사람이 미쳐버린다,는 설정이니 좀비라는 수식어는 아무래도 조금 부정확하지 않나 싶네요.
애초에 지들끼리 말도 하고,심지어 작전을 세워서 계획적으로 다른 사람을 덮치고 하니.뭣보다 악역들이 하나같이 죽었던게 아니라 처음부터 살아있던 사람이니까요.

물론 이런 류의 영화가 호불호는 강하긴 하지만,어찌됐건 본인이 재밌었다면 그만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저예산 영화치고 꽤 재밌게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더 워먼>-가부장 제도의 원시적인 야만성에 대하여 =영화 감상기=

한 줄 요약 - 현대의 가부장적 제도가 과연 문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극히 가부장적인 크리스는 변호사이자 1남 2녀를 자식으로 둔 가장입니다.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원시적인 습성을 가진 한 여자를 발견하고 그녀를 사로잡아 문명인으로서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생포해 집으로 데려옵니다.
하지만 그는 집 안에서 지극히 권위주의적인,좋은 아버지는 아니었고 그의 부인과 딸은 그녀를 몹시도 두려워 합니다.

<메이>와 <마스터즈 오브 호러>에서 [식 걸]이라는 에피소드로 잘 알려진 럭키 맥키 감독의 영화입니다.
메이가 워낙에 수작이었던지라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이름을 한 번 정도는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네요.

사실 이 영화는 놀랍게도 속편이며 전작이 있는 영화입니다.


바로 <오프스프링> 이라는 영화입니다.
영화 <더 워먼>에서 등장하는 여인이 대체 누구인지,그녀가 왜 원시적인 인간인지를 보여주는 영화이긴 한데요.

음...저로서는 사실 이 영화를 본 건 꽤 예전이지만 감상평을 따로 올리진 않았어요.
아무래도 설정을 놓고 보았을때는 스코틀랜드에 실존했다고 하는-반면 역사학자들은 부정하는- '소니 빈' 일가의 이야기에서 따온듯한 이야기이긴 한데...이 전설을 가지고 영화를 이렇게 재미없게 만들 수 있나...싶을 정도였거든요 =_=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 <더 워먼>을 감상하실 예정이시라면 굳이 <오프스프링>까지는 감상을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의미없는 고어씬에,문명과는 동떨어진 원시인들이 나와서 사람을 납치해 잡아먹는다는 내용이거든요
(심지어 추격씬 마저 이렇다할 긴장감이 없으니,오락적인 재미도 느끼긴 참 힘듭니다)

아무튼 본편으로 돌아와서.

이 영화의 중심인물인 '크리스'는 그냥 한 마디로 '개새끼' 입니다.
아니,천하의 짐승만도 못한 새끼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말이겠네요.

사회에서 그는 유능한 변호사이지만 실상은 부인에게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심지어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습니다.여자들은 남자의 소모품이라고 생각할 뿐더러,자신의 친딸에게도 못 할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인과 딸은 그에게 반항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무서우니까요.오랫동안 학습된 자신의 무력감과 그의 폭력성을 건드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더욱 더 무소불위의 폭군처럼 행동하기 일쑤입니다.

남자가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자 큰 딸인 페기는 어떤 즉각적 반응-거부,혹은 호응-이 아니라 먼저 자기 아빠의 눈치부터 살피고,아내인 벨은 그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려다가 이내 곧 자신이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하 권력 관계가 이 집안에 존재한다는 복선이죠.

그렇다면 그의 아들은 어떨까요?
사실 이 아들내미도 정상은 아닙니다.싸이코패스인 자기 아빠를 닮아서 자신이 여자보다 못한 점을 인정하지 못할 뿐더러 괴롭힘을 당해도 그저 방관하기 바쁘죠.

하지만 더욱 끔찍한 것은 바로 그의 '이중적인 폭력성'이 아들에게 대물림 된다는 것입니다.
브라이언이 그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고도 크리스는 '남자애가 그럴수도 있지' 라며 오히려 그를 옹호합니다.

아무리 부전자전 이라지만 이건 좀.....보는 저도 중간에 '저런 미친새끼' 라면서 쌍욕이 튀어나오더군요.

영화는 중반까지는 좀 지루하게 흘러가지만 중반 크리스와 아내인 벨이 서로 대립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탄 것 처럼 급격하게 진행됩니다.

문제는 이 전개가 철저하게 짜여진 것이었으며,곪아 썩어들던 것이 기어이 터져버린 것이지요.
그 와중에 크리스의 막장 행보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심각하게 진행됩니다.

극 중에서 등장하는 '여자'는 바로 크리스의 야만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벨과 큰 딸인 페기의 억눌려 있던 분노를 상징합니다.
자,그렇다면 마지막에 크리스와 그의 아들 브라이언은 어떻게 될까요?

이 위태로운 가정에 평화는 찾아올까요?그 여자는 정말로 교화될 수 있을까요?아니면 이 지옥같은 집에서 탈출 할 수 있을까요?

감독은 가부장 제도라는,현대 사회에서 가장 남성주의적인 가정을 내세워 그들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지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다 보고나서도 씁쓸함이 입 안에 남아 결국 담배를 피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영화였네요.

p.s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중에 한 중년 남성이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와서 '이런 영화는 불태워서 없애버려야 한다' 라고 했다는군요.무엇이 그를 그리도 불쾌하게 했을지.......

<쿠티스>-흠...터레스팅 =영화 감상기=

한줄 요약 - 머리 싹 비우고 보는 영화

좀비 영화가 쏟아지는 일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니 새삼 놀라울 것도 없지만,이번에는 '초등학생' 좀비가 나오는 영화라니.
세상 참 많이도 변했구나,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_=
보통 영화 속 어린이들 하면 거의 대부분이 보호받는 존재로 나왔으니까요.

물론 어린아이들이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건 아닙니다.존 카펜터의 수작 <저주받은 도시> 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다만 이 영화를 그 영화와 같은 수준으로 놓기에는 조금...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겠네요.

영화의 전개는 매우 간단합니다.오염된 치킨 너겟이 초등학교 급식으로 보급되고 이로 인해 한 아이가 좀비화->이후는 뭐 예상 가능한 대로 아이들이 공격받고 전염되어 어른인 선생님들을 위협한다,라는 아주 간단한 스토리 전개입니다.

다만 이대로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니 학교 자체를 봉쇄하고 선생님들도 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초등학생 좀비,라는 소재 때문에 뭐 그저 그런 아동 영화겠거니,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영화의 고어씬은 은근 무시하기 힘듭니다.좀비영화에서 흔히 나오는,떼거지로 한 명을 덮쳐서 뜯어먹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니까요.

(애들 데리고 이런 장면은 대체 어떻게 촬영했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드네요)

코믹 호러물을 표방하고 있기에 영화는 시종일관 너무 무겁지 않고 가볍게 흘러갑니다.특히나 케릭터성 강한 인물들이 영화의 극을 끌어가며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지요.
분명 진지한 장면인데 특유의 코믹한 대사 때문에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장면이 몇몇 있긴 합니다.

다만 두 명의 남주인공과 한 명의 여주인공에 대한 그 삼각 관계는...솔직히 왜 넣었을까,싶기도 해요.
물론 기본 줄거리만 놓고보면 그저 그런 좀비물이 될 수 있으니 서브 스토리를 넣은것은 이해하지만.사족 같은 느낌이네요.
굳이 이런게 없어도 케릭터들만 가지고도 재미있게 끌고갈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굳이 초등학생 좀비로 넣은 이유는 뭘까 싶기도 하구요.
물론 애초에 코미디 영화이니 뭔가 큰 의미-교육 현장의 실태라던가,정크 푸드로 인해 망가져가는 아이들이라던가 등등-는 사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뭔가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라고 생각해도 '그래서 생각한게 초등학생 좀비?' 라는 의문만 가득해지네요.
결론은 '평소 무섭다고 생각지 않던 대상의 공포화' 가 목적일텐데요.뭐 좀비라는 테마 자체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호러블한데 굳이 초등학생'만' 좀비가 된다는 설정은 왜 넣었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듭니다.

그래도 굳이 의의를 둔다면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후로 꾸준하게 연기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일라이저 우드를 B급 호러물에서 본다는 것?보통 배우들이나 감독들이 성공한 이후에 호러물 출연이나 연출을 잘 안하는 것에 비하면,이렇게나 얼굴이 잘 알려진 배우를 이런 영화에서 보는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으니까요.

[공.대.탐]<할로윈>-그 영화는 왜 전설이 되었는가 =공.대.탐=

비헤이비어 디지털 개발 / 스타브리즈 스튜디오가 유통하는 호러 서바이벌 게임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스팀에서 판매되는 게임이다.개성 넘치는 생존자와 살인마들이 등장하는 이 게임에,어느 날 갑자기 <할로윈> 시리즈의 살인마이자 스타 케릭터인 마이클 마이어스가 참전하게 됐다.

게임의 출시는 2016년.허나 다들 알다시피 영화의 첫 시리즈는 1978년이다.
무려 38년이라는 긴 세월을 뛰어넘어 영화에서 게임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등장한 마이클 마이어스.

물론 이 케릭터가 호러영화 출신이라는 점은 인터넷을 뒤져보면 얼마든지 금세 알 수 있겠지만.
대체 <할로윈>이라는 영화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라는 사람들을 위한 짧은 안내서를 준비했다.

1.전설의 '남다른 시작'

-호러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는 '낯선 곳에서 맞닥트리는 공포' 를 들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여행을 간다거나,혹은 다른 이의 초대를 받는다거나,이사를 한다거나 등등...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낯선 곳에서 설레임 대신에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로 인하여 두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호러영화에 있어서 정말 사골 육수만큼이나 엄-청나게 우려먹는 설정 중 하나이다.

<할로윈>과 비슷한 시점에 나온 토브 후퍼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생각해보면 텍사스 속 살인마인 레더 페이스도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에서 살인마로 등장하니,어찌보면 재미있는 우연이다)

그렇다면 이 클리셰는 어디서 왔을까?

[1977년 고(故)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영화 힐스 아이즈.국내 출시명 <공포의 휴가길>.프랑스의 신예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이 리메이크한 그 영화의 원작이다]

그 출발점은 바로 위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당시엔 저예산으로 나름대로의 완성도와 흥행까지 겸비한 호러 영화였고 이 영화에서 시작된 클리셰는 이후로 호러 영화의 단골 클리셰가 되었다.

사실 이 클리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영화 <할로윈>은 이 클리셰를 정 반대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직면하는 공포" 가 아니라 "내가 잘 아는 곳이 한 순간에 공포의 현장"으로 바뀌는 긴장감을 표현한 것이 바로 <할로윈>의 내용이다.

일부 보수적인 미국인들이 타인에 대해 배타적인 것을 되짚어보자.사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유입된 알 수 없는 미지'에 대한 공포를 물리치고자 하는 것인데,이를 극단적으로 바꿔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은 나의 집에서도 안전할 수 없다" 라는 것이 <할로윈>이 주는 공포의 기본 골자이다.


2.퓨어 이블

- "15년 전 쯤에 처음 만났죠.아무것도 없더군요.이유도,양심의 가책도,이해심도요 (중략) 그의 마음 저편에 있는 순수한 악의 본연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by 샘 루미스 박사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의 제이슨은 나름대로 '복수'라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하고,또 자신이 죽어가도 그냥 내버려둔 사람들을 향한 확실한 적의를 가지고 있다.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의 경우도 어린 시절이 처참하긴 하지만,자신을 죽인 엘름 가 사람들에 대한 복수라는 나름대로의 목적이 존재한다.

하지만 마이클 마이어스의 경우,그가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다.
물론 그가 자신의 핏줄인 로리 스트로드를 죽이려는 이유조차 단 한번도 나오지 않으며,나중에는 아예 자신의 어린 조카인 에이미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사실 이게 꽤 놀라운게,헐리웃 호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어린 아이는 절대 죽이지 않는다.심지어 제이슨 조차 어린아이는 건드리지 않는다!)

즉,애초에 마이클에게 '살인' 을 하는 것에는 그 어떠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눈 앞에 보이니까 죽이는 것 뿐이다.
이쯤되면 78년 당시에 사이코패스 살인마 케릭터를 만든 존 카펜터 감독에게 경외심이 느껴질 정도이다.


3.모든 슬래서 호러의 교과서

-<할로윈>시리즈를 어느 정도 다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두 알 내용이긴 하지만,중요하니 한번 더 짚고 가자.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슬래셔 호러를 완성시켰다.

1)피해자는 미친듯이 뛰지만 살인마는 절대 뛰지 않는다.

2)차에 시동을 걸려고 하면 걸리지 않는다

3)술 마시지 마라.죽는다

4)섹스하지 마라.죽는다

5)"곧 돌아올게"라는 말을 하지 마라.죽는다

6)마약하지 마라.죽는다

7)혼자서 살인마와 싸우려 하지 마라.당연히 죽는다

사실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면 '이거 예전에 다른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라고 생각되는 내용들이 있을 것이다.
애초에 <할로윈> 에서 모두 정립해놓은 내용이기에 아마도 그럴 수 밖에.

(좀비 영화의 교과서인 고(故) 조지 A.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떠올려 보자.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올해 2018년에는 이 시리즈의 리부트가 제작중이라고 하는데,호러 영화 매니아로서 이번에는 어떤 것을 보여줄지 조금 걱정이지만 그래도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행복해질 수 없는 시대의 동화 =영화 감상기=

한줄 요약 - 성실을 뒤집으면 실성이 되는 시대의 잔혹극

한국의 현실을 비꼬는 말로 '헬조선' 이라는 단어와 함께 흔히들 하는 말이 '노오오오력을 해라' 라는 레퍼토리를 자주 씁니다.
물론 성공하기 위해,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행복을 위해 노오오오력을 안 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하지만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만큼,이 영화는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잔인하게 뒤틀릴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구청의 무료 심리상담실.상담 시간이 끝나갈 시간에 수남은 상담사를 찾아와 그녀를 결박한 다음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행복해지고 싶었는데...그러니까,내 이야기 듣고 내가 당신 죽이는 거 이해해달라는 수남.
대체 그녀는 어떤 일을 겪었기에,그리고 상담사에게 무슨 원한이 있길래 그녀를 죽이려는 걸까요?

영화는 정말 눈물 날 정도로 노오오오력을 하는 수남의 모습과,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조금씩 비참해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손에 물집이 터지고 굳은 살이 박히도록 일해도 돈이 부족해 결국 대출로 산 집,하지만 점점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급기야 자살기도를 하다가 식물인간이 된 남편,그리고 그 병원비도 감당해야 하고,그 와중에 재개발 소식으로 집값이 오르면 좀 숨통이 트이겠거니 했더니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위.

이런 상황이라면 정말 누구라도 실성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영화 속 인물들은 수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다 우리가 주변에서 한번쯤 접할만한 인물들입니다.

원사라고 불리는 시위대 행동 대장은 영화에서 권위주의를 상징합니다.그는 해병대를 전역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복을 입고 다니며 수남에게 물리적 폭력을 거리낌 없이 행사합니다.

분노조절 장애를 갖고 있는 형석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그는 자신보다 '위' 라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선 고분고분 하지만,자신보다 '아래' 라고 생각되는 수남에게는 원사보다 더한 폭력을 휘두릅니다.
그리고 상담사이자,사람들을 선동하여 재개발 반대 시위를 하는 경숙 역시 무지한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사실 이 외에도 영화에서 속물이라고 불릴만한 인간들은 참 다양해요.
병원비가 밀리자 존엄사를 권유하다가 완납 후 좀 더 생각해보라는 의사,재개발 진행을 위해 수남을 이용하여 서명을 받아내려는 계장 등등.

심지어 이들 중에는 수남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위협한 사람도 있었고 수남은 자신을 위해 살인까지 하게 됩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남에게 죽임을 당하는" 무한 경쟁 사회 이니까요.거기에 수남을 추적하는 형사들까지.
(사실 그나마 이 사람들이 가장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이긴 하네요)

영화는 줄곧 수남의 행보를 보여주면서 "사회가 이렇게나 힘든데 언제까지 노오오오력만 하라고 할거야?" 라고 말합니다.
물론 영화이니만큼 진행에 있어 어느정도 과장은 들어가 있긴 합니다만,그렇다고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정말 말 그대로 현실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동화 속 앨리스는 이상한 세계에 떨어지는데,뒤집어 보면 이상한 세계 주민들의 입장에서 앨리스는 이방인일 뿐이죠.
영화 속 주인공 수남이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이미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그녀는 그저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것 처럼.

이 영화에서 특히 빛나는 건 이정현씨의 연기입니다.선배 연기자들에게 전혀 눌리지 않을 만큼,아니 오히려 독보적일 정도로 정말 소름돋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녀가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별로 없는 저 자신도 순간 울컥할 정도였네요.

지극히 한국적인 잔혹극을 보고 싶으시다면 감상하는걸 적극적으로 권해드립니다.

<H2:어느 살인마의 가족 이야기>-그만 만들어라 =영화 감상기=

한줄 요약 - 원작에 대한 심각한 모독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이전부터 워낙에 평이 악평 일색이라 조금 걱정은 되긴 했습니다.그래도 전편은 그래도 나름 괜찮게 봤던지라 어쨌든 영화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하는 생각으로 감상을 하긴 했습니다만.

롭 좀비 감독은 이제 영화는 그만두고 정말 음악에만 집중하는게 좋을 것 같네요.

대략적인 시놉시스는 전편에서 2년 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직접적으로는 이어지기는 하지요.

문제는 전편에서 이어진 케릭터에 대한 재해석이 이 영화에선 완전히 괴상하게 이어지고 있어요.
사실 슬래셔 호러는 그 어느 호러보다 케릭터가 중요한 영화입니다.

전편도 호불호가 강하긴 했지만 전 사실 그럭저럭 괜찮게 본 영화였어요.왜냐면 슬래셔 호러 영화 치고 '살인마 케릭터'를 그 영화만큼 디테일하게 파고든 영화가 없었으니까요.

슬래셔 호러가 대부분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바디 카운트에 대한 묘사만 늘어나는 것에 비하면,어릴 적의 마이클 마이어스에 대해 나름 깊게 파고든 전편은 상당히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선...갑자기 정말 뜬금없는 설정을 추가해버립니다.문제는 그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에서 한 번 써먹은 설정이었다는 것이고,또 <할로윈> 시리즈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라는게 문제에요.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케릭터가 다른 슬래셔 호러물의 케릭터들과 차별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가 '순수한 사이코패스' 하는 것입니다.

제이슨과 프레디의 동기가 '복수'인데 반해 마이클의 살인에 대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는 샘 루미스 박사가 직접 입으로 '그의 마음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단지 순수한 악이 존재한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죠.

그런데 갑자기 쌩뚱맞게 '가족'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마이클이라니.어딘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습니다.

주인공인 로리의 경우 전편의 일로 인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는 하지만 배우의 연기가 너무 뻣뻣해요.
틈만 나면 입에 "Fxxx" 을 달고 사는데 보는 제가 다 짜증이 나서 "Fxxx"이 튀어나오게 만듭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샘 루미스 박사인데....원작의 영화팬들 중에서도 샘 루미스의 박사 팬들이 상당한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선 그저 돈 밝히는 인간 말종 쓰레기로 만들었네요.

.....이쯤되면 감독이 원작을 제대로 보긴 했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아니면 그저 마이클과 로리를 부각시키시 위해 루미스 박사를 쓰레기로 만든건가 싶기도 한데 마이클의 진정한 호적수는 사실 루미스 박사이지 로리가 아니에요.
감독의 원작에 대한 심각한 잘못된 해석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됩니다.

정말 이쯤되면 마이클 베이 감독이 제작한 <나이트메어>의 리메이크가 멀쩡해 보일 지경입니다.
적어도 그 영화는 프레디의 아이덴티티에 대한건 건드리지 않았으니까요.

다행인건 이 시리즈가 3편까지 기획되었다가 3편은 결국 제작 취소가 되었다는데.정말 잘 됐습니다.
이제 할로윈 리메이크는 다시 놓아주는게 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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