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스토커>-그 가족들에겐 무슨일이 있었나 =영화 감상기=


[※Warning : 이 글은 양질의 스포일러를 듬뿍 함유하고 있습니다]

인디아의 18살 생일날,건축가였던 인디아의 아버지는 사고로 죽게됩니다.그런 모자앞에 갑자기 홀연히 나타난 삼촌 찰리.
심지어 엄마인 이블린마저 몰랐던 그의 존재에 인디아는 그를 경계하지만 그는 "친구가 되자"며 그녀의 주변을 맴돕니다.

찰리를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인디아.

그런데 그가 나타난 이후로 점점 주변 사람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게 되는 한편 이블린은 젊고 매력적인 찰리에게 끌리게 됩니다.

헐리웃으로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첫 신호탄인 <스토커>입니다.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지만,그의 전작인 <박쥐>처럼 상당히 호불호가 갈릴듯 하군요.

그도 그럴것이 스토리만 놓고보면 대중을 위한 "반전 스릴러" 영화로도 보여지기 쉽지만 박찬욱 감독이 누굽니까.

우리는 전작들 ㅡ 특히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것,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을 떠올리면 그가 쉽사리 "대중만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님을 다들 아실겁니다.


1.이블린과 인디아

-니콜 키드만의 미모가 여전히 빛을 발하는 매력적인 미망인 이블린.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인디아와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아니,정확히 말하자면 인디아가 이블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친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늘 아버지인 리차드와 사냥을 자주 나갔었다는 설정에서 우리는 쉽게 인디아를 "엘렉트라 컴플렉스에 빠진 소녀" 로 생각하게 됩니다.게다가 그녀는 지금껏 아버지가 선물한 같은 디자인의 신발을 모두 버리지 않고 모아놓았으니,누구라도 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하지만 이것은 감독이 심어놓은 함정에 지나지 않았죠.

사실 어찌보면 비슷하기도 합니다.리차드가 사냥을 통해 여러가지를 인디아에게 알려준 반면,이블린은 실상 영화 내내 이블린에게 이렇다 할 무언가를 해준 것이 없어 보입니다.

반대로 놓고보면 오히려 이블린이 인디아를 경계하는 듯한 모습도 보입니다.이 불편한 모자관계는 백설공주의 원본을 떠올리게 만들며,그것은 곧 인디아가 이블린에게 "인디아...넌 누구지?" 라는 대사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어찌보면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장 불쌍한 케릭터는 이블린이 아닌가 싶습니다.자신의 딸에게 리차드를 빼앗기고,그도 모자라서 찰리마저 인디아에게 끌리는 모습에서 그녀는 18살 생일을 기점으로 소녀에서 숙녀로 커버린 그녀에게 여성적 질투심을 느낀 것이겠지요.


2.인디아와 리차드

-인디아에게 있어 리차드는 아버지이자 친구이며 좋은 스승이었습니다.항상 인디아의 생일땐 모든 일을 내던지고 인디아에게 달려갔다는 이블린의 말에서 리차드가 얼마나 자신의 딸을 아꼈는지 엿볼 수 있네요.

그리고 리차드는 영화에서 아주 결정적인 열쇠를 가진 인물입니다.비록 비중은 매우 적지만,그는 스토커 가족사의 비극을 막으려 한 장본인이며 끝내 자신의 친동생인 찰리에게 살해당한 인물입니다.

천부적인 사이코패스였던 찰리에게서 인디아를 지키기 위해 그가 했던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야생동물 사냥입니다.

"가끔씩 나쁜 짓(사냥)을 해야 더 나쁜 짓(살인)을 막을 수 있다" 라는 대사에서,그는 인디아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 파괴성향을 사냥으로서 조금씩 풀게해 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본능은 찰리에 의해서 깨어나게 됩니다.


3.인디아와 찰리

-가장 중점적으로 두고 봐야 할 인물 관계는 바로 인디아와 찰리입니다.찰리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천부적인 사이코패스였으며,인디아의 18번째 생일 날 정신병원에서 퇴원을 하게 됩니다.
(물론 자신의 형인 리차드를 죽인 날도 바로 그 날이었죠)

차례대로 짚어본다면,일단 지하냉장고를 봐야겠네요.찰리는 아이스크림 두 통을 사서 인디아에게 지하에 있는 냉장고에 갖다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지하는 어둡고 축축하며,사람이 쉽사리 드나들지 않는 곳입니다.즉,무엇인가를 숨기기에는 아주 적합한 장소이죠.

그리고 아이스크림은 바로 그런 인디아와 찰리의 "파괴적 충동"을 암시합니다.한편으로는 "살욕"과 "성욕"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영화 초반부에 잠시 등장했던 인디아의 다리를 타고 오르는 거미가 그녀의 치마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곧 그녀가 본격적으로 성욕에 대해 눈을 뜨게 됨을 암시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는 인디아와 찰리가 같이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있는데,이 장면에서도 인디아는 거의 성적 흥분에 가까운 듯한 표정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과 같은 동류를 만난 것에 대한 기쁨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인디아가 자신도 모르게 찰리에게 끌리는 이유 역시 이것과 일맥상통 합니다.

다시 앞서 말했던 "살욕"과 "성욕"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돌봐준 가정부가 살해당해 그 시체가 아이스크림을 넣어둔 냉장고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목격함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습니다.

이때에도 분명 인디아는 범인이 찰리라는 것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하지만 그녀는 찰리보다 좀 더 영리했지요.일부러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태연하게 행동하는 모습에서,그녀는 스스로도 자신에게 "살인 충동"이 있다는 것을 어느정도 느꼈는지 모릅니다.

인디아는 학교에서 성적은 우수하지만 매우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주변에 관심없는 무미건조한 아이입니다.
그런 그녀가 밤의 숲속에서 남학생에게 먼저 대범하게 키스를 하는 것은 꽤나 놀라운 변화이지요.
물론 이것도 그 앞전에 이블린과 찰리가 키스를 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는데,이 장면이 아마도 그녀가 본격적으로 자신안의 성욕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이지 않나 싶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장면으로서 인디아가 침대에 누워 팔과 다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장면이 있는데,이것은 과거의 찰리가 했던 것과 오버랩 되면서 그녀 역시 찰리와 같은 살인에 대한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증명하네요.


4.인디아,넌 누구지?

ㅡ영화의 가장 첫 시작점으로 돌아가 봅시다.인디아의 독백중에서 "치마가 바람에 날리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장면은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안에 잠들어 있는 본능을 받아들였음을 의미합니다.

엄마의 블라우스,아버지의 벨트,삼촌이 사준 구두는 개인적으로는 인디아가 가족들이었던 그들에게서 받은 유산 같은것이 아닐까,싶네요.물론 이 부분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굉장히 많이 달라질 여지가 충분합니다만,소녀가 자신의 본능을 받아들이고,가족들에게서 받은 것들로 독립해 나아가 한명의 어엿한 여성이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게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그녀의 미소에서,그녀 스스로도 매우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중간에 나오는 열쇠는 아마도 그녀의 아버지인 리차드가 준 것이 아닐까,싶습니다.열쇠는 무언가 잠겨있는-숨기고 있는 것-문이나 서랍등의 공간을 열어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게 하는 도구입니다.

이건 아마도 어쩌면 찰리에게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려해 찰리에게 인디아 스스로가 찰리에 대해 알아차리고 대항하길 원한 아버지의 마지막 배려였을지도 모릅니다.

***

간만에 본,정말 제대로 재미있는 스릴러 였습니다만,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영 맞지는 않겠군요.
굳이 분류한다면 <박쥐>와 비슷한 류의 영화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후에 박찬욱 감독이 내딛을 행보가 기대되네요.

덧글

  • 에반 2013/09/14 21:41 # 답글

    포스팅 제목 자체가 약간 스포일러 같다는 느낌이 드네효^^;; 전 극장에서 봤는데 정말 재밌게 봤어요 ㅎ 장면의 세련됨과 매튜 굳의 미모에 감탄하며 ㅎㅎ 저도 다음 박찬욱 감독님 영화가 무지 기대되네요 ㅎㅎ
  • J_KID 2013/09/15 03:37 #

    음 써놓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결정적인건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의 중심내용을 관통하고 있으니...나중에 후딱 수정해야겠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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